1. 지금 유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몇 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보수 정당이 1위를 했다"는 뉴스는 충격이었다. 2026년 현재,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EU 27개국 중 7개국(이탈리아, 헝가리, 핀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네덜란드)이 이미 보수 정당을 정부 안에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대체로 ▲강한 반(反)이민 ▲자국 우선주의 ▲EU 통합 회의론을 공유하는 정당들이다. 한국으로 치면 "기성 정치권을 싹 갈아엎자"는 포퓰리스트 정당에 가깝다.
핵심은 이것이다. 단순히 보수가 의석을 늘린 게 아니라, 유럽 정치의 무게중심 자체가 우측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중도 정당들이 이민·치안 정책을 따라 우경화하면서, 한 세대 전이라면 "극단적"이라고 불렸을 정책이 평범한 정치 영역으로 들어왔다.

2. 세 나라에서 본 같은 패턴
영국, 보수당이 사라지고 있다
영국은 지난 100년간 노동당(좌)과 보수당(우) 두 정당이 번갈아 집권해온 나라다. 2024년 7월 노동당 키어 스타머가 압승했을 때만 해도 이 구도는 굳건해 보였다.
1년 반 만에 무너졌다. 2026년 5월 기준 여론조사 평균은 다음과 같다.
Reform UK: 약 25~28% (1위)
보수당: 약 17~19%
노동당: 약 18%
Reform UK는 나이절 패라지(브렉시트의 주역)가 이끄는 신생 보수 정당이다. 결정적 사건은 2026년 5월 7일 잉글랜드 지방선거였다. Reform은 약 1,373석을 새로 얻으며 12개 카운슬(우리나라로 치면 시·군) 통치권을 장악했고, 노동당은 1,496명의 지방의원과 38개 카운슬을 잃었다. 보수당도 의석을 잃었다.
특히 충격적인 건 Reform이 옛 노동당 텃밭인 북부 공업지대를 빼앗고 있다는 점이다. 100년 양당제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중이다.

독일, AfD가 마침내 1위
독일에는 다른 정당들이 모두 합의한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AfD(독일을 위한 대안)와는 절대 손잡지 않는다." 나치 역사 때문에 만든 정치적 금기선인데, 독일 사람들은 이를 "방화벽"이라 부른다.
이 방화벽이 무너지고 있다. 2025년 2월 총선에서 AfD는 20.8%를 얻어 제2당이 됐고, 2026년 5월 현재 여론조사에선 마침내 1위다.
AfD: 26.9%
집권당 기민당(CDU/CSU): 23.5%
사민당(SPD): 13.0%
특히 옛 동독 지역(통일 전 공산권이었던 동쪽 5개 주)에서 AfD 지지가 압도적이다. 9월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일부 지역은 40%를 넘는다. 한 정당이 다른 정당과 손잡지 않고서는 정부를 못 만들 만큼 큰 정당이 된 셈이다.

포르투갈, 50년 양당제의 종언
포르투갈은 1974년 군부 독재가 무너진 뒤, 사회당(중도좌파)과 사회민주당(중도우파) 두 정당이 50년간 번갈아 집권해왔다. 한국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같은 구도다.
2025년 5월 총선에서 그 50년 패턴이 깨졌다. 보수 정당 Chega("이제 그만"이라는 뜻)가 22.8%를 득표해 60석을 얻고 제2당이 됐다. 1974년 이래 처음으로 좌-우 두 거대 정당이 아닌, "좌 vs 보수" 구도로 재편된 것이다.

잠깐, 네덜란드는 반대 아닌가?
2025년 10월 네덜란드 총선에선 중도 정당 D66이 빌더스의 보수 정당 PVV를 근소하게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많은 매체가 "보수의 후퇴"로 보도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PVV가 잃은 표는 다른 우파 정당으로 옮겨갔을 뿐, 우파 지지층 자체는 줄지 않았다. 빌더스 개인에 대한 거부였지, 우파 이데올로기 거부가 아니었다.
3. 왜 이런 일이? 세 가지 핵심 원인
(1) 이민과 생활비, 두 위기의 결합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한 해에만 130만 명의 비호 신청자가 유럽에 몰려왔다. 지금은 유입이 크게 줄었지만 정치적 효과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2025년 평화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민에 반대하는 1차 이유는 안보(테러)가 아니라 경제·주거 문제다. 집값, 생활비, 공공서비스 과부하가 이민 반대 정서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가격 폭등이 겹쳤다. 청년층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질 첫 세대"라는 위기감을 느낀다.
(2) 중도 정당의 우경화가 오히려 보수를 키운다
가장 흥미로운 역설이다. 기성 정당들이 "보수를 막기 위해" 강경 이민 정책을 도입하면, 유권자들은 "원조가 더 신뢰할 만하다"며 진짜 보수로 옮겨간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메르츠 총리는 2025년 1월 AfD 표에 의존해 이민 제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과는? 기민당 지지율은 5%p 하락했고 AfD는 6%p 상승했다.
(3) 청년과 농촌의 좌절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AfD는 독일 16-24세 청년층에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이대남" 현상과 비슷하다. 청년의 보수 지지는 더 이상 "어르신 현상"이 아니다.
또 하나, 청년이 떠난 농촌과 소도시에서 보수 지지가 강하다. 일자리와 서비스가 사라진 지역의 좌절이 기성 정치 거부 투표로 이어진다.
4. 폴리마켓: 시장은 어떻게 베팅하고 있나
여론조사는 시점의 단면이지만, 폴리마켓 같은 예측시장은 실제 돈이 걸린 확률이다. 일반적으로 여론조사보다 한 발 빠르다. 현재 가장 의미 있는 3개 마켓을 보자.
마켓 1. 독일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 AfD 92~94%

2026년 9월 13일 투표 예정. 옛 동독에 위치한 작센안할트에서 AfD 승리 확률 92~94%. 단순히 1위가 아니라 압도적 1위가 거의 확정이라는 시장의 판단이다.
마켓 2. 2027년 프랑스 대선, 바르델라 24%로 선두

마크롱은 연임 제한으로 출마 불가. 보수 국민연합의 간판 마린 르펜은 횡령 유죄로 5년 피선거권 박탈(2026년 7월 항소심). 이 공백에서 르펜의 후계자 조르당 바르델라(30세)가 24%로 선두다. 2위는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20%). 프랑스가 처음으로 보수 대통령을 가질 가능성이 진지하게 거론되고 있다.
마켓 3. 영국 차기 총선, Reform UK의 부상
영국 총선은 늦어도 2029년 8월까지 치러져야 한다. 2026년 5월 지방선거 압승 이후 Reform UK가 차기 총선 1당이 될 확률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일부 의석 예측 모델은 Reform이 보수당과 연정해 패라지가 총리가 될 시나리오까지 내놓는다.
5. 결론
유럽 우경화는 트럼프 효과 같은 외부 자극이 아니라 유럽 자체의 구조 변화다. 2015년 이민 충격, 코로나 이후 경제 침체, 에너지 위기가 누적된 결과다. 기성 정당의 대응(이민 정책 우경화)은 단기적으로 통하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보수 프레임을 정당화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시장은 이를 알고 가격에 반영하는 중이다.
진짜 질문은 "보수가 더 커질 것인가"가 아니다. 그 답은 이미 나왔다. 유럽 통합, 기후 정책, 우크라이나 지원, 대중·대러 관계가 이 새 균형점에서 어떻게 재조정될 것인가가 다음 질문이다. 2026년 가을 독일 주의회 선거와 2027년 4월 프랑스 대선이 그 답의 윤곽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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