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앨범을 200만 장씩 파는 그룹의 신보에, 예측시장은 12만 장짜리 눈금을 그어놨습니다. 자릿수를 잘못 본 게 아닙니다. 같은 앨범, 같은 첫 주를 두고 한국과 바깥이 완전히 다른 숫자를 세고 있기 때문입니다.
1. K팝은 이미 예측시장의 고정 종목입니다

엔하이픈 신보의 발매 첫 주 판매량 구간별 확률. 10만~12만 장이 가장 두껍다
K팝은 이 판에서 한 번씩 튀어나오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계속 돌아가는 종목이죠. 블랙핑크가 언제 앨범을 낼지, 뉴진스가 다시 무대에 설지, 월드컵 결승 하프타임 무대에서 BTS가 어떤 곡을 먼저 부를지까지 마켓이 열렸습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반복되는 유형이 앨범 발매 첫 주 판매량 마켓입니다. 국내에서 흔히 초동이라고 부르는 그 숫자죠.
지금 열려 있는 것만 둘입니다. 하나는 8월 21일 나오는 엔하이픈의 미니 8집 '더 신: 블리스', 다른 하나는 8월 14일 이미 발매된 케이시(KATSEYE)의 세 번째 EP '와일드'입니다.
엔하이픈 마켓의 구간은 이렇게 나뉘어 있습니다.
10만~12만 장: 41.5%
12만~14만 장: 25.5%
8만~10만 장: 24.2%
14만~16만 장: 8.5%
16만 장 이상: 7.5%
8만 장 미만: 6.0%
여기서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엔하이픈은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이 2020년 데뷔시킨 그룹으로, 최근 넉 장의 앨범이 연달아 200만 장대를 찍었습니다. 직전 앨범 '더 신: 배니시'는 발매 첫 주에만 207만 장이 팔렸죠. 그런데 그 다음 앨범을 다루는 마켓의 구간이 16만 장에서 끊깁니다.
2. 이 마켓이 세는 숫자는 한터가 아닙니다

8월 21일 발매되는 엔하이픈 미니 8집 '더 신: 블리스'
마켓의 정산 규정을 열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K팝 앨범 판매량 마켓들은 미국 음악업계 매체 히츠 데일리 더블(Hits Daily Double)이 집계하는 주간 순위표의 'Activity' 수치로 정산됩니다. 미국에서 팔린 실물과 다운로드, 스트리밍을 앨범 한 장 단위로 환산해 더한 값입니다.
한터차트가 세는 것과는 다른 자입니다. 한터는 전 세계로 나가는 한국 음반의 실물 출고를 잡고, 히츠의 수치는 미국이라는 한 나라 안에서 실제로 소비된 양을 잡습니다.
그래서 같은 앨범에 숫자가 두 개 붙습니다. 엔하이픈의 '더 신: 배니시'는 한국 집계로 첫 주 207만 장이었지만, 미국 집계로는 첫 주 12만 2천 장이었습니다. 그중 실물이 11만 3천 장, 스트리밍을 환산한 몫이 9천 장이었죠.
같은 앨범 같은 일주일인데, 한쪽에서 207만이던 숫자가 다른 쪽에서는 12만이 됩니다.
3. BTS 아리랑, 눈금을 두 번 다시 그은 사건

BTS '아리랑' 마켓의 최초 구간. 300만 장 미만이 100%로 정산됐다
이 간극을 예측시장이 정면으로 맞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3월 BTS의 정규 5집 '아리랑' 때입니다.
당시 처음 열린 마켓의 구간은 300만 장 미만부터 600만 장 이상까지였습니다. 한국에서 나오던 숫자를 기준으로 눈금을 그은 겁니다. 실제로 아리랑은 발매 첫날에만 398만 장, 첫 주에 417만 장이 팔리며 BTS의 자체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그런데 정산은 300만 장 미만이 100%였습니다. 미국 집계 기준 첫 주 수치가 64만 1천 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실물이 51만 6천 장, 그중 바이닐만 20만 8천 장이었고 빌보드 200에서는 3주 연속 1위를 했지만, 마켓이 그어둔 여섯 개 구간은 전부 허공에 떠버렸습니다.

아리랑은 바이닐만 17종으로 나왔다. 미국 첫 주 실물 판매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그래서 같은 앨범에 하향 구간 마켓이 새로 열렸습니다. 80만 장 미만부터 110만 장 이상까지로 눈금을 다시 그은 겁니다. 결과는 다시 최저 구간, 80만 장 미만 100% 정산이었습니다. 두 번 그은 눈금이 두 번 다 실제 숫자 위쪽에 있었던 셈입니다.

아리랑은 스포티파이 K팝 역대 최다 스트리밍 앨범 기록을 세웠다
4. 그래서 지금 눈금은 이렇게 그어져 있습니다
엔하이픈 마켓의 8만~16만 구간을 다시 보면, 전작의 미국 첫 주 12만 2천 장이 정확히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아리랑에서 두 번 빗나간 눈금이 이번에는 전작의 미국 성적 위에 얹혀 있는 겁니다.
눈여겨볼 지점은 가장 두꺼운 구간이 10만~12만 장이라는 것입니다. 전작보다 아래죠. 구간별 확률을 100으로 환산하면 전작 이상, 그러니까 12만 장 이상이 나올 확률은 37% 안팎입니다. 이번 앨범이 지난 3월 희승이 팀을 떠난 뒤 여섯 명으로 내는 첫 앨범이라는 점도 같이 놓입니다.
5. 미국에서 만든 K팝은 반대편에 섭니다

하이브가 미국 게펜 레코드와 함께 만든 다국적 걸그룹 케이시
같은 시기 열린 케이시 마켓이 정반대 그림을 보여줍니다. 케이시는 하이브가 미국 게펜 레코드와 함께 만든 다국적 걸그룹입니다. K팝 제작 시스템으로 뽑았지만 활동 무대는 미국이죠.

8월 14일 발매된 케이시의 세 번째 EP '와일드'
8월 14일 나온 '와일드'를 두고 마켓은 11만 장 이상에 95.5%를 놓고 있습니다. 10만~11만 장 구간은 3.5%까지 내려가 있습니다. 업계 전망도 같은 방향으로, 첫 주 12만~14만 장에 빌보드 200 1위 데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케이시로서는 첫 1위입니다. 지난해 '뷰티풀 카오스'가 4만 4천 장으로 4위였으니 세 배 가까이 뛰는 셈이죠.

뒤늦게 열린 상향 구간 마켓에서도 11만 장 이상이 95.5%다
한국에서 200만 장을 파는 그룹과 미국에서 12만 장대를 찍는 그룹이, 예측시장 화면 위에서는 비슷한 크기의 숫자로 나란히 놓입니다. 국내 차트에서 두 그룹의 거리는 열 배가 넘는데도 그렇습니다. 마켓이 K팝을 어떤 자로 재고 있는지가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엔하이픈의 새 앨범은 8월 21일에 나오고, 두 마켓 모두 그 주에 정산됩니다. 국내 기사에는 또 백만 단위 숫자가 뜰 텐데, 그 숫자와 마켓이 읽는 숫자는 이번에도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을 겁니다.
✍️ TL;DR
K팝 앨범 첫 주 판매량 마켓의 정산 기준은 한터가 아니라 히츠 데일리 더블의 미국 소비량 환산 수치다. 이름만 같고 다른 숫자다.
BTS 아리랑에서 마켓은 300만~600만 구간을 그었다가 미국 64만 장에 두 번 빗맞았고, 지금 엔하이픈 마켓의 8만~16만 구간은 그 학습의 결과다.
국내 판매량 차이가 열 배여도, 미국 환산 수치에서는 엔하이픈과 케이시가 같은 12만 장대에 놓인다.
